선언에서 실현으로: 탄소중립 2050의 무게. 오늘은 탄소중립은 가능할까? 현실과 과제 사이에 대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전 세계가 ‘2050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다. 한국 역시 2020년 10월, 대통령의 공식 선언을 시작으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는 단지 하나의 환경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체계의 전환, 산업 구조의 개편, 사회 전반의 라이프스타일 변화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전환 계획이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선언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아직도 전체 전력의 60% 이상이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고, 재생에너지의 확대 속도는 더디며, 탄소배출이 높은 산업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 “과연 탄소중립은 현실 가능한 목표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이유다. 이 글에서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현실적 조건, 기술적 한계, 산업 및 사회 구조의 변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현주소와 과제를 살펴본다.
에너지 전환의 현주소: 재생에너지는 충분한가?
탄소중립의 첫 번째 관문은 단연 ‘에너지 전환’이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력을 확보하지 않고는 산업, 수송, 건물 등 다른 분야의 전환도 불가능하다.
화석연료 중심의 현재 전력 구조
2024년 기준, 한국의 전력 생산에서 석탄과 LNG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석탄은 전 세계적으로 퇴출 압박을 받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신규 석탄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오이씨디 국가 중 하나다. 이 구조는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고, 원전 확대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분열되어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의 현실적 한계
정부는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로는 2023년 기준 10% 초반에 그치고 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부지 확보 문제: 태양광 설치를 위한 부지 확보가 지역 갈등을 초래
송배전 인프라 미비: 재생에너지는 분산형이므로 기존 대규모 송전망과 맞지 않음
간헐성 문제: 풍력과 태양광은 날씨에 따라 변동성이 커, 기저전력으로 불안정
독일이나 덴마크 같은 재생에너지 선진국들도 이 간헐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 저장 기술과 스마트 그리드 확장에 수십 년간 투자해왔다. 한국은 이 부분에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해외 사례: 전환의 속도와 방식의 차이
노르웨이는 전력의 90% 이상을 수력으로 공급하며 전기차 보급률이 세계 1위다. 반면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탄소배출을 억제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은 지리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역시 태양광·풍력 확대만이 아닌 지역 특성에 맞는 혼합형 전원 구성 전략이 요구된다.
기술 혁신과 현실 사이: 무엇이 발목을 잡고 있는가
탄소중립을 가능케 할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러 측면에서 현실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특히 비용, 상용화 속도, 인프라 부족이라는 세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탄소포집·저장의 한계
화석연료를 당장 끊을 수 없다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주목받는 기술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기술은 비용이 매우 높고, 장기 저장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다.
현재 국내에서 상용화된 CCUS 설비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전체 탄소 배출량을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수소 에너지: 가능성과 과장 사이
수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특히 ‘그레이 수소’)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진정한 탄소중립 수소는 ‘그린 수소’인데,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생에너지 전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재생에너지 인프라 없이는 수소도 탄소중립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의 이면
전기차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다량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리튬, 코발트 등의 희귀 금속 채굴 과정은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는 비판도 있다.
즉, 기술이 곧바로 탄소중립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기술의 전 과정을 고려한 ‘전체 탄소 발자국’ 분석이 필수적이다.
산업 구조 개편과 정책 전환: 쉽지 않은 전환의 정치경제학
기술과 에너지 전환만으로는 부족하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개편과 정책 시스템의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고탄소 산업의 저항과 이익 구조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은 한국 산업의 수출 주력 분야이자 동시에 탄소 배출의 핵심 산업이다. 이들 산업은 공정 전환을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며, 생산량 감소에 대한 우려로 적극적인 전환에 소극적이다.
예를 들어, 수소환원 제철은 이론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으나, 현재 기술로는 기존 고로에 비해 2~3배 이상 비용이 발생한다.
일자리 구조의 재편
화석연료 기반 산업이 줄어들면, 해당 분야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의 일자리 재교육과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닌, ‘정의로운 전환’이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다.
유럽연합은 이에 따라 ‘전환 기금’을 마련하고, 노동자 재훈련과 지역 재생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도 2023년부터 관련 정책을 도입했지만, 예산과 지원체계는 아직 미비하다.
탄소세와 탄소시장: 정치적 부담
탄소 가격 부과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강력한 유인책이지만, 산업계의 부담과 물가 상승, 국민 반발이라는 정치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한국은 탄소세 도입을 미루고 있고, 현재의 배출권 거래제도도 가격이 낮아 유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탄소중립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은 가능한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
탄소중립은 가능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기술적 진보와 정책적 결단, 산업계의 전환 노력, 시민의 인식 변화가 동시에 움직여야만 가능한 목표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단지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질서와 지속 가능한 삶의 조건을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기후 위기 시대,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다. 선언만으로는 부족하고, 현실만 탓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의지와 실천이 탄소중립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