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후 위기, 다른 충격. 오늘은 기후 불평등: 누가 더 큰 피해를 입는가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기후 변화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폭염, 가뭄, 해수면 상승, 홍수와 같은 기상이변은 전 세계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피해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같은 폭우라도 어떤 이는 빗물이 새는 집에서 목숨을 잃고, 어떤 이는 안전한 고지대 아파트에서 뉴스를 본다. 기후 변화는 불평등을 확대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다.
세계은행은 기후 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1억 명 이상의 인구가 빈곤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 저소득층, 섬 국가 주민들은 기후 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피해를 입고, 가장 적게 보호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후 불평등의 실체를 개발도상국, 도시의 저소득층, 해안 및 섬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 해결을 위한 국제적·정책적 과제를 함께 짚어본다.
개발도상국의 이중고: 낮은 책임, 높은 피해
기후 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한 나라들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은 국제적으로도 이미 잘 알려진 불평등이다.
탄소 배출의 책임은 선진국에 더 크다
산업혁명 이후 누적된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은 북미,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이 담당했다. 전 세계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0% 이상은 이들 국가에서 발생했지만, 그 피해는 주로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에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대륙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 미만을 차지하지만, 식량 안보, 가뭄, 사막화로 인해 가장 먼저 기후 재난의 영향을 겪고 있다.
농업 기반 국가의 생존 위협
개발도상국 다수는 농업에 경제적 생존을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기후 변화는 계절의 흐름을 바꾸고, 가뭄과 폭우를 반복시키며 농업 생산성을 급격히 낮추고 있다. 사헬 지역 국가들은 가뭄으로 인해 초지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곧 유목 생활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생계 방식의 붕괴로 이어진다.
인프라와 대응 능력의 부족
기후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 방재 시스템, 수자원 관리, 주택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상태이며, 이로 인해 피해가 더 빠르게, 더 넓게 확산된다.
예를 들어, 2022년 파키스탄 대홍수는 국토의 3분의 1을 침수시키며 수천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는데, 그 배경에는 극단적 강우뿐 아니라 저지대 취약 주거지, 하수도 인프라 미비 등 복합적 요인이 존재했다.
도시 저소득층의 ‘보이지 않는 피해’
기후 불평등은 국가 간 문제만이 아니다. 한 도시 안에서도, 심지어 같은 동네에서도 소득과 거주 환경에 따라 기후의 영향은 달라진다.
열섬현상의 피해자: 도시의 저소득층
도시 중심부, 특히 슬럼가나 반지하 거주지는 여름철 열섬현상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고밀도 지역은 낮 동안 흡수한 열을 밤에도 방출하며, 냉방 장비가 부족한 가구는 심각한 열사병과 불면증에 시달린다.
2022년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발생한 침수 사망 사고는, 도시 내 기후 불평등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거주 환경이 기후 재난의 피해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에너지 빈곤과 기후 취약성
에어컨이나 난방기가 있더라도 전기 요금을 감당할 수 없는 가구는 냉난방 기기 사용을 자제하게 되고, 이는 결국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에너지 빈곤층은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온도에 더욱 노출된다.
특히 고령자, 독거노인, 장애인 가구는 외부의 도움 없이 폭염이나 한파에 대응하기 어려워, 사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취약 노동과 기후 위험의 겹침
건설 노동자, 배달 종사자, 거리 청소 노동자 등 야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들은 폭염과 한파에 가장 많이 노출된다. 이들은 건강 보호 장비나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받기 어려워, 노동 환경이 곧 생명 위협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저소득층은 주거, 건강, 노동 환경 모든 면에서 기후 변화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
섬과 해안 지역의 존재론적 위기
기후 불평등은 단순한 삶의 질 저하를 넘어, 어떤 지역과 공동체에게는 ‘존재의 위기’로 이어진다. 특히 저지대 해안 지역과 섬 국가가 그 중심에 있다.
해수면 상승과 삶의 터전 상실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남태평양의 투발루, 키리바시 같은 섬나라는 물에 잠길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 국가는 높은 산이나 대피처가 없고, 국토 자체가 평균 해발 2~3미터에 불과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해수 침투로 인해 식수가 오염되고, 농업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기후 변화로 국가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기후 난민’을 넘어 기후 주권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기후 이주와 정체성의 문제
섬 국가 주민들이 타국으로 이주할 경우, 단순히 주거지뿐 아니라 언어, 문화, 공동체 정체성까지 잃게 된다. 이는 경제적 손실을 넘어,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깊은 고통을 야기한다. 국제사회는 아직 이에 대한 법적 지위나 보호 체계를 명확히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해안 도시와 기후 격차의 확대
해수면 상승은 서울, 뉴욕 같은 대도시에도 위협이 되지만, 고지대 이주나 해안 방벽 설치가 가능한 선진국과 달리, 저개발국의 해안 도시는 수시로 침수와 태풍 피해에 노출된다. 방글라데시 다카, 필리핀 마닐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같은 도시들이 대표적인 예다.
자카르타는 해수면 상승과 지반 침하로 인해 2050년경 도시 절반이 침수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결국 수도 이전이라는 극단적 결정을 내렸다.
기후 정의 없이 기후 해결은 없다
기후 변화는 단지 탄소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 건강, 주거, 교육, 문화, 공동체 등 인간 삶의 모든 요소를 흔들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위기다.
가장 적게 배출한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가장 오래 고통받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구호나 기술로 해결될 수 없다. 기후 정책은 반드시 정의로운 전환, 사회적 안전망의 보강, 국제 연대를 전제로 삼아야 한다.
“누가 더 많이 배출했는가”보다 이제는 “누가 더 많이 고통받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지구를 지키는 일이자,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기후 불평등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공정한 책임 분담과 연대의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